
"계율에 대하여"
.....................................
** [화엄경] 권12 [보살십무진장품]에는 보살에게 열가지의 계율이 있다고 설하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무엇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계율인가?" 보살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합니다. "무엇이 다투지 않는 계율인가? 보살은 먼저 계율을 지켜 제정한 것을 그르다 하지 않고 다시 만들지도 않으며 마음은 항상 열반으로 향하는 계율을 따르되 완전히 지녀 헐거나 범하지 않고 그 계율로 말미암아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서로 다투게 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다만 중생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악을 떠나는 계율인가? 보살은 스스로 잘난 체하여 "나는 계율을 지닌다"고 말하지 않고. 계율을 범한 사람을 보고도 그를 경멸하거나 나무라고 괴롭히지 않으며 다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닐 뿐닙니다.
** 이 내용은 계율의 근본 이념에 중점을 두고 설해진 것이며 그 이념은 곧 중생을 이익되게 함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
"실제적인 내용에 있었서 계율은 다름 아닌 "선업(善業)을 행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아함경이나 율장에 보이는 가장 대표적이며 또 근본적인 계율인 "오계(五戒)는 십선업(十善業)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본생경] 56 번째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 계율의 부담 때문에 수행을 포기하고 "환속하려는 비구에게 "몸과 입과 뜻의 악업을 삼가 하라" 고만 하시는 부처님의 말씀도 그런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계율의 항목 가운데서 현실적인 문제로 많이 부딪히게 되는 것이 "불음주(不吟酒)의 계인데 특히 재가신자의 경우에는 그 계율을 지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전의 말씀에 의하면 술은 "방탕의 근본으로 사람을 미치광이처럼 만들며. 바른일과 좌선과 경전을 외우는 일 등을 폐지하고 상실시키며.[대방편불보은경 권6]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악행의 근본" 이자 "진심(瞋心) 과 무명(無明) 의 원인"[대장엄론경 권15]이라 하여 엄히 금하고 있어 가히 "오계"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아서 설사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그 술의 패해인 방탕.진애.우치나 기타의 악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계율이 "업" 교설과 같은 지평에서 설해졌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이거니와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 [잡아함경 권37, 1044경]에 설해져 있음으로 그 내용을 소개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말씀 하셨다.
"나는 그대들을 위해 스스로를 통달하는 법."자통지법(自通之法)을 설명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공부하여야 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만일 누가 나를 죽이려 하면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면 남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남을 죽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살생하지 않는 계율을 받고 살생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다." - 하략 -
그리고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도둑질. 사음. 거짓말. 이간질. 욕설. 꾸며대는말에 대해서도 남을 자신과 같이 생각하여 행하지 않아야 함을 가르치시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계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악업을 떠난다"는 근본 정신을 망각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덧붙인다면 대승에 있어서는 "보리심" 을 중시하여 "선업(善業) 과 불도를 향함과 이승(二乘)을 탐하지 않음의 셋을 계로써 말하기도 한다. (대지도론)
"효(孝)에 대하여
...............................................
불교에서 효를 중시한다는 점은 이미 말한 바 있음으로 여기서는 그와 관련된 경전의 말씀을 소개 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하여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얹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얹어 천만년 동안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으로 공양할 때에 그 부모가 어깨위에서 오줌과 똥을 누더라도 자식은 그 은혜를 다갚지 못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부모의 은혜는 지극히 무거우니 우리를 안아 길러주고 때때로 보살펴 시기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저 해와 달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은혜의 갚기 어려움을 알고 공양하며 효순하여 그 시기를 놓치지 말라. [증일아함경.선지식품]
** 다음에 소개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는 시간적인 차원에서의 "효와 불교적인" 의미에서의 진정한 효의 대한 차이점을 대비시킨 좋은 예일 것이다.
옛날 두형제가 살았다. 세력이 크며 부하고 귀하여 재산이 한량없었는데 부모가 돌아가자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들은 비록 형제이지만 생각은 각기 달랐다. 형은 도와 위의를 좋아하였으나 아우는 가업을 사랑하고 세상의 영화를 탐하였다. 형이 오로지 학문에 힘쓰고 도를 물으면서 집안 살림에 관계하지 않자 아우는 항상 원망하였다. "다 같이 형제가 되어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으면 부지런히 애쓰면서 생활을 걱정하여야 할 것인데. 도리어 가업을 버리고 사문들과 사귀어 불경만 듣고 받드니 사문이 언제 형님에게 옷이나 재물을 주셨습니까? 집은 갈수록 가난 하여지고 재물은 날로 줄어들어 사람들이 비웃으니 가문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자식이 되었으면 공을 세워 부모가 이룬 업을 폐하지 않고 이어 나가야 효자라 할 것입니다." 이에 형은 대답 하였다. "다섯 가지 계율과 열가지 선으로 삼보에 공양하고 여섯가지 바라밀을 행하며 고요히 앉아 선정을 생각하고 도로써 부모를 교화하는 것이 효도일 것이다" 라고 - (하략) - [잡비유경 제11]